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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무소르그스키와 러시아 민속의 도시들

by 양팽 2025.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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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는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의 대표 작곡가이자, 진정한 ‘러시아의 소리’를 구현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단지 작곡가가 아닌, 민중의 정서를 음악으로 기록한 예술적 민속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아온 도시와 지역의 문화, 말투, 리듬, 생활방식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특히 러시아 민속의 중심지인 도시들에서 얻은 감성과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무소르그스키의 음악과 그 배경이 된 러시아의 주요 도시들—특히 카레보,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을 중심으로 그가 어떻게 민족성과 예술성을 융합했는지 살펴봅니다.

저는 러시아를 한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는 러시아로 언젠가 음악 여행을 떠나보고 싶을 것 같네요. 

카레보: 무소르그스키의 출발점

무소르그스키는 1839년, 러시아 제국의 토르옵츠(Toropetsky Uyezd)에 위치한 카레보(Karevo)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은 현재 푸스크 지역에 속하며, 울창한 숲과 평원이 펼쳐진 전형적인 러시아 농촌 풍경을 간직한 곳입니다.
그가 태어난 귀족 가문은 당시 기준으로 중산층 지주 계급에 속했지만, 그리 화려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그는 농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노래, 억양, 구술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했습니다. 이 경험은 훗날 무소르그스키 음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민중적 리듬과 말투를 음악에 녹여내는 기법’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그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합창 장면은 바로 이 어린 시절 농민 공동체 속에서 체득한 감각이 반영된 부분입니다. 그는 민속음악을 단지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리듬과 음률을 자신만의 음악 언어로 해석해 냈습니다. 카레보는 단지 출생지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적 유전자가 생성된 기원의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음악계의 레빈 같다고 느껴집니다.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시골 귀족출신 레빈이 밭에서 종들과 같이 밭매던 게 떠오르네요. 무소르그스키도 그런 삶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과 실험의 중심

무소르그스키는 1852년, 13세의 나이에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로 이주하여 군사학교에 입학합니다. 이후 그는 이 도시에서 러시아 음악계의 핵심 인물들, 특히 ‘러시아 5인조’로 불리는 동료 작곡가들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당시 유럽과의 교류가 활발한 도시로, 서구적 형식과 러시아 고유의 전통이 충돌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트페테부르크는 굉장히 고급스럽고 화려한 러시아 문화예술의 중심인데요. 무소르그스키는 이곳에서 서양 음악이 추구하던 화성과 구조에 반기를 들며, 보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음악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의 음악은 기존의 고전주의 형식에서 벗어나, 러시아어 억양과 민중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특히 그는 《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 》 을 통해 친구 하르트만의 유작을 회화처럼 표현하며, 도시적 예술성과 민속적 감각을 절묘하게 융합합니다. 이 작품은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의 문화적 영향과, 무소르그스키 개인의 내면세계가 만난 대표적인 결과물로 평가됩니다.
이 도시에서 그는 창작뿐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대한 감수성도 키웠고, 이것이 후에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하는 오페라《보리스 고두노프》 같은 작품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에게 실험의 무대이자, 민속성과 고급예술을 연결하는 교차로였던 셈입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위치한 성 바실리 대성당의 알록달록한 양파 모양 돔들과 붉은 벽돌 외관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대성당

모스크바: 전통과 제국의 기운

모스크바(Moscow)는 무소르그스키의 주 활동 무대는 아니었지만, 러시아 정체성과 민족적 상징성을 가장 강하게 품은 도시였습니다. 그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교회의 의례음악, 종교적 선율, 구음법 등에 큰 관심을 가졌고, 이를 자신의 음악에 종종 활용했습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표면적으로는 역사 오페라이지만, 그 이면에는 러시아 민중의 목소리와 제국의 역사, 그리고 종교의식이 얽힌 복합적 정서가 녹아 있습니다. 특히 무대 배경이나 합창 구성은 모스크바 크렘린이나 성 바실리 대성당 등 러시아의 상징적인 공간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또한 그는 모스크바의 음악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러시아 민속음악의 다채로운 지역적 색채를 배우고, 이를 자신의 음악적 언어로 정제해갔습니다. 시베리아와 우랄, 볼가 지역에서 전해지는 노래들이 모스크바를 통해 편곡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전해졌고, 무소르그스키는 그 통로 속에서 민속성과 음악적 형식의 실험을 조화롭게 시도했습니다.
모스크바는 무소르그스키에게 있어 러시아의 정신적 상징이자, 민속음악의 대서사시가 흐르는 공간이었습니다.

007 시리즈 영화에서 보던 크렘린, 모스크바 성 바실리 대성당을 보고 싶네요. 현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때문에 가기 어렵지만 만 곧 그 땅에 평화가 찾아와서 러시아 여행이 정상화되서 가볼 수 있길 바랍니다. 

러시아 민족주의 작곡가, 무소르그스키

무소르그스키는 도시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음악적 자양분으로 삼은 작곡가였습니다. 카레보의 민중 정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술적 실험, 모스크바의 전통적 상징성—이 세 도시가 만들어낸 감성과 문화는 그의 작품 속에서 러시아 민족성과 실험성이 공존하는 음악 세계로 승화되었습니다.
오늘날 그의 음악은 단지 러시아의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고유한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킨 보편적 유산입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을 들을 때, 그가 살아온 도시들의 향기와 숨결도 함께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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